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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임상병리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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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KAMT 울산 Plenary Lecture 연자, 차경호 대한임상화학검사학회 명예학회장을 만나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26.06.18
조회수
8

2025 KAMT 울산 Plenary Lecture 연자, 차경호 대한임상화학검사학회 명예학회장을 만나다

이번 9월 20일(토)부터 21일(일)까지 양일간 개최되는 2025년 제63회 대한임상병리사 종합학술대회 및 국제컨퍼런스에는 ‘Plenary Lecture(전체 강연)’가 예정돼 있다. ‘Plenary Lecture’란 각 연구분야의 대가들을 초청하여 최신 동향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강의로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이번 ‘Plenary Lecture’ 연자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팀장이자 제14대 대한임상화학검사학회장인 차경호 명예학회장을 선정했다.
대한민국 5대 상급종합병원으로 불리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장시간 근무해 온 차경호 명예학회장을 만나 그의 삶의 여정과 임상병리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차경호라고 합니다. 1987년도에 임상병리학과에 입문을 해서 1990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강남성모병원에 입사 후 현재 35년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검사 업무 실무를 20여 년간 했고 생화학 UM(Unit Manager)를 5년, 팀장을 지금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협회 활동은 34살부터 한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에 석사학위를 취득할 무렵인 2001년에 서울특별시임상병리사회 활동을 시작해 13년 정도 했고 2008년 무렵부터 대한임상화학검사학회 활동을 해서 2024년 2월까지 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명예학회장으로 있습니다.


Q.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오랜 기간 CMC(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와 그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CMC와 임상병리사, 어떠한 역사의 의미를 가질까요?
협회의 여러 가지 중요한 역사의 굴곡점마다 CMC에서 봉직하셨던 김약수 선생님, 김남호 선생님 등 여러 선배님들의 활약상을 잘 되새기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학회장으로 있을 때 학회 35년사를 임기 내에 출간했습니다.
선배님 중 김약수 선생님은 1989년도 초대 국시위원장을 하셨습니다. 김남호 선생님은 제가 같이 얘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팀에 근무하셨던 김남호 선생님의 자제분께 말씀드려서 친필 서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학문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한 통찰력을 이어받고 그런 것들을 승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 35년간 임상병리사로 근무하시면서 어떠한 임상병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셨을까요?
저는 특출나게 뛰어나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소위 말하는 ‘스마트’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하지만 저는 목표를 세우면 차근차근하는 스타일입니다.
젊은 날부터 그랬어요. 제가 젊은 날부터 퇴근 시간 딱 되면 집에 간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은 한두 시간 정도는 병원에 남아서 뒷정리를 하거나 미진했던 것들을 리뷰하고 이렇게 젊은 날 쭉 그렇게 보내왔어요. 그날 그 일과 중에는 실수할 수도 있죠. 근데 리뷰를 하다 보면 발견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쭉 그렇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30년 넘게 이렇게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보통 집에 가는 게 보통 8시쯤 돼요. 5시 퇴근이거든요. 근데 이제 뒷정리 좀 하고 가고 머리 식히고 ‘내일 뭐 할까?’ 이런 생각들 하고 또 ‘우리 후학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이제 저한테 영향을 미쳤던 분들에 대한 리뷰를 조금 해보면 젊었을 때 박정준 선생님이라고 계셨어요. 미생물 분야에 지금 퇴직하신 우리 선배님인데 그분이 제가 입사를 해서 신규 직원일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시간 금방 갑니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공부하세요.’ 이렇게 말씀한 게 그날 그 시절의 그 표정 그리고 그 진심을 바로 느끼고 나서 그다음에 제가 결심을 하고 바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선배님이 30대 중반이었을 거예요. 그분도 매일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늦게 같이 공부했어요. 그게 이제 우리 선배님이 저한테 준 교훈이었어요.
30대 때는 모시고 있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들하고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검사 업무를 하는데 이제 ‘그 일만 할 줄만 알아’의 단계에서 좀 벗어나질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검사의 맥락이 어떻고, 이걸 임상에서는 어떻게 요구하고 이런 연계성들을 가지고 이 검사의 전반을 이해해야 되는데 검사 업무를 할 줄만 알고 잘하려고 그거만 한계를 줘서 자꾸만 하니까 이제 답답하셨는지 그런 걸 이제 좀 폭넓게 보도록 이렇게 지도해주셨어요.
40대 접어들면서는 이제 논문을 써보라고 교수님이 권유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해외 저널에도 논문을 낸 적이 있죠. 논문을 써보니까 또 느끼는 무언가가 또 따로 있더라고요.
이제 그 생각을 텍스트로 만들고 정해져 있는 플랫폼에서 여러 가지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게 틀을 갖춘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Q. 오랫동안 진단검사의학과 팀장으로 근무해오시면서 많은 후배 임상병리사들을 선발하셨을텐데 임상병리사의 직업관과 필요한 자질, 요구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새로운 임상병리사 선생님들이 입사를 하면 한 보름 정도 이내에 부서 오리엔테이션을 직접 하고 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병리사의 업무와 마음 자세, 병원의 폭넓은 지휘 체계에 대해 설명하며 검사실뿐만 아니라 기관 전체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알고 일할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어요.
검체 검사 서비스는 궁극적으로 환자한테 도움이 돼야 합니다. 검사 결과가 도움이 되려면 임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식의 요구사항으로 처방을 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가서 사용되어지고 그래서 이 결과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생각해야 하고요. 또, 검사 결과에 대한 영향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과 관련해서 이제 폭 넓게 임상의가 바라볼 때는 어떠한가를 우리가 생각을 하고 일을 해야지 임상의하고 단절하고 우리 검사실에 온 검체만 가지고 아웅다웅 이렇게 일을 하면 안 돼요. 그냥 검체만 만지작거리는 게 아닌 임상의의 요구사항을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거죠.

Q. 이번 제63회 대한임상병리사 종합학술대회 및 국제컨퍼런스 Plenary Lecture의 연자로 나서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을 준비 중에 계실까요?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을 하면서 주위를 쭉 둘러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우선 주옥같은 내용이 많아서 제가 매우 좋아하는 도서가 ‘웨스트가드가 알려주는 QC 실무 지침서 제3판’이거든요. 여기에는 제가 번역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덕규, 김약수 선생님이 집필하신 ‘임상검사의 정도관리’가 있습니다. 협회에서 그래서 초판 200부를 찍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책에도 매우 좋은 말들이 많이 써 있어요. 머리말도 매우 훌륭하고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게 굉장히 내용이 아주 좋아요.
그리고 이 QC 실무 지침서에는 통계적인 내용도 있지만 내용에서 보면은 검체 검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본인의 부모님 피를 검사하는 것처럼 검사해라’라고 돼 있고 ‘업무적인 지식이 그 사람의 지위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아는 것은 힘이다’ 이런 내용들이 쭉 있어요. 그래서 그런 내용들로 주제를 정했고요.
그리고 제가 젊은 날에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는지, 그리고 선배님들은 어떤 말들을 하셨는지, 질 관리의 요체, 후학들이 신경 썼으면 하는 점 등의 내용을 종합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대한임상병리사협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과 미션에 대해 생각하신 게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협회에서 하고 있는 학제단일화, 한국임상병리교육평가원 등 중요한 정책들은 다 지금 잘하고 계시잖아요.
이번에 인터뷰 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배님들의 온전한 그 바람들, 이력들이 밑에 젊은 분들한테 뿌리내리도록 좀 더 노력을 해야 된다고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렇기에 역사 보존을 해야 합니다. 협회에 한켠에는 병리협보가 초판부터 정리돼 있어야 하고 이러한 역사의 자료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자료실을 마련해서 과거에는 어떻게 했고 옛 선배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살았는지 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좀 미진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것을 좀 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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