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행복해야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다” - 임상병리사이자 래퍼, MC Guy 손명진 회원 인터뷰
- 작성자
- 최고관리자
- 작성일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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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다”
임상병리사이자 래퍼, MC Guy 손명진 회원 인터뷰

손명진 회원은 병원과 무대, 봉사 현장을 오가며 세 가지 얼굴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삶을 묶는 한 줄의 철학은 단순하다.
“행복해야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다.”
병원 안팎을 넘어, 세상 곳곳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 있는 MC Guy, 손명진 회원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임상병리사와 래퍼라는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걷고 계십니다. 먼저 자기소개와 두 길을 병행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성모병원 병리과에서 근무하면서 동시에 래퍼 MC Guy로 활동하고 있는 손명진입니다. 임상병리사로는 올해 19년 차에 접어들었고, 2006년부터 병리과에서 일해왔습니다. 음악은 사실 어릴 때부터 제 삶의 중심에 있었지만, 직업을 선택하면서 잠시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싱글 앨범 LOVE YOU를 발표하면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열렸죠. 그때부터 병원과 무대를 오가며 두 가지 길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두 무대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삶의 일부입니다.
Q. ‘MC Guy’라는 활동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많은 분들이 ‘왜 Guy일까?’ 궁금해하세요. 단순히 ‘랩하는 녀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제 네 번째 싱글의 제목이기도 한 ‘가희(歌喜)’에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노래 가(歌), 기쁠 희(喜). 노래하는 기쁨, 음악으로 얻는 행복을 담은 거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쓰던 이름인데, 당시 팬카페도 있었고,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이름을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MC Guy’는 저의 음악적 정체성이자 제 청춘의 기록이기도 해서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Q. 지역아동센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적 형편이 어려워 장난감을 갖고 싶어도 늘 문방구 앞에서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문방구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게 하루의 낙이었죠.
성인이 되어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그때 하지 못했던 ‘한풀이’처럼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방 가득 쌓인 장난감을 보며 ‘어릴 적 나와 같은 아이들이 지금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안산시청에 전화를 걸어 봉사할 곳을 찾았고, 그렇게 처음 지역아동센터를 알게 됐습니다. 그게 벌써 9년 전입니다.
Q. 봉사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아동센터를 방문합니다. 지금까지 50여 곳을 돌았고, 내년이면 만 10년을 채우게 됩니다. 장난감을 직접 준비하고, 아이들 앞에서 하나하나 나눠주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제게 선물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나눠줄 수 있었죠. 아내가 직접 차를 몰고 함께해주고, 두 아이도 어릴 때부터 봉사 현장에서 물건을 나르고 영상을 찍으며 도와줬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의 활동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해온 여정이라 더 뜻깊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 하다 그만두겠지’ 했는데, 벌써 57번째 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힘든 줄 모르고, 오히려 제가 더 큰 힘을 얻습니다.
Q. 헌혈도 꾸준히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지금까지 129번 헌혈을 했습니다. 대부분 혈소판 헌혈이에요. 백혈병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사실 처음엔 바늘이 무서워 헌혈을 기피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이제는 루틴처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공연 무대에 서면 늘 헌혈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혈액이 부족하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하고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작은 실천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죠. 저는 임상병리사로서 ‘내 환자는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헌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병리과에서 근무하며 느끼는 보람은 무엇인가요?
병리과는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지만, 수술장에서 나온 조직을 다루며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부서입니다. 우리가 꼼꼼하게 제작한 슬라이드 덕분에 교수님들이 병을 판독할 수 있고, 결국 환자의 치료 방향이 정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임상병리사의 첫 번째 덕목은 꼼꼼함’이라고 강조합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게 정확함입니다. 작은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실습생들에게도 늘 ‘일상생활에서는 덤벙거려도, 일할 때만큼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 초심을 지키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음악과 봉사활동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저는 모든 사람이 어릴 적엔 ‘착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주겠다거나, 부자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 경쟁과 현실 속에서 점점 그런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면 기부하겠다’는 말은 끝내 실천하지 못할 핑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지금 내가 가진 만큼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활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나도 해볼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Q. 대한임상병리사협회 학술대회 무대에 서게 되셨는데,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가요?
작년 송도 무대에서 회원들과 함께한 경험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선배, 후배님들과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웃던 그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울산 무대에서도 ‘미팅 페스티벌’ 사회와 공연을 맡게 됐는데, 참가한 열 팀 모두 소홀히 하지 않고, 각 팀이 준비한 무대를 빛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 공연 시간을 줄이더라도 모든 참가자들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음악적 꿈은 무엇인가요?
제 나이는 이제 마흔여섯이지만, 여전히 무대에 대한 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음악 시상식 ‘MAMA’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이 제 전성기라고 믿습니다. 살아 있는 한, 꿈은 계속됩니다.
Q. 임상병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임상병리사를 ‘피 뽑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리과, 진단검사, 세포·분자검사, 면역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떠올리면 의사와 간호사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안에는 임상병리사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설 때도 늘 ‘저는 임상병리사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음악과 봉사활동을 통해 임상병리사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 임상병리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어릴 적 꿈을 간직한 채 병원 일만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병원 일과 병행하면서도 꿈을 충분히 펼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행복하고, 지금 실천하는 겁니다. 행복해야만 선한 영향력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손명진 회원은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도 제 음악을 통해 더 많은 분들과 공감하고 싶다”며 유튜브 채널 ‘MC guy (엠씨가이)’와 곧 선보일 신곡에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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